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공공이 토지를 소유할 때 부동산 시장은 안정될까? — 토지공개념과 시장 균형의 딜레마

by miles 300 2025. 11. 7.

부동산 시장이 폭등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논의가 있다. 바로 ‘토지는 개인이 아니라 공공이 소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토지의 사유화를 제한하면 투기가 줄고, 주거비도 안정될 것이라는 논리다. 한국에서도 이 개념은 여러 차례 등장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토지공개념, 2000년대 초반의 개발이익환수제, 그리고 최근 논의되는 토지임대부 주택제도까지 —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진 정책이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공공이 토지를 소유하면 정말 부동산 시장은 안정될까? 이 글에서는 경제적, 제도적, 심리적 측면에서 그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살펴본다.

🏛️ 토지공개념의 원리 — 시장 대신 공공이 조절하는 땅의 가치

토지는 한정된 자원이다. 생산을 늘릴 수도 없고, 새로운 땅을 만들 수도 없다. 따라서 시장에 맡겨두면 필연적으로 희소성이 가격을 끌어올린다. 이 때문에 토지는 일반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의 성격을 가진다고 본다. 바로 여기서 ‘토지공개념’이 등장한다. 토지공개념은 간단히 말해 “토지의 가치는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철학이다. 토지를 소유하더라도 그 이익은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공이 일정 부분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헌법 개정으로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국가가 규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문화되며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 개념은 이후 공공택지 공급, 개발부담금, 보유세 강화 등 여러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최근의 ‘토지임대부 주택’ 역시 토지를 공공이 소유함으로써 주택 가격을 낮추려는 시도다. 즉, ‘땅값’을 빼고 집값만 거래하는 구조다.

💡 공공토지의 장점 — 투기 억제와 초기 진입장벽 완화

공공이 토지를 보유하면 첫째, 투기를 억제할 수 있다. 토지가 거래되지 않으니 가격 상승 기대심리가 줄어들고, 투자 목적의 수요가 감소한다. 둘째, 초기 주거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서울의 주택 가격 중 절반 이상은 토지값이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분양가는 크게 낮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SH가 발표한 마곡 10-2단지의 토지임대부 주택은 인근 시세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공급된다. 공공이 토지를 보유하고, 입주자는 건물만 분양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셋째, 토지를 국가가 보유하면 도시계획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다. 도로·공원·주거단지를 장기적 관점에서 설계하며 부동산 개발의 방향을 통제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은 단기적으로는 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이 구조에는 ‘시장 역동성의 훼손’이라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 구조적 한계 — 시장 기능이 마비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

토지공개념은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문제를 낳았다. 첫 번째 문제는 비효율성이다. 공공이 토지를 보유하면 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지만, 그 대신 공급 속도가 늦어진다. 개발 결정권이 관료 시스템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실제 LH나 SH가 주도하는 공공택지 사업의 평균 사업기간은 민간보다 2~3배 길다. 행정 절차, 예산 승인, 설계 변경 등으로 인한 지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공공독점의 폐해다. 토지를 모두 공공이 보유하게 되면 사실상 ‘국가가 부동산 시장을 통제’하게 된다. 이 경우 부패, 비리, 비효율이 생길 수 있고, 주거 선택의 다양성이 제한된다. 세 번째 문제는 ‘자산 형성의 단절’이다. 토지를 개인이 소유하지 못하면 부동산을 통한 자산 축적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국민의 부의 성장 사다리가 끊긴다. 토지임대부 주택에 거주하는 청년층이 결국 자산을 늘릴 수 없다는 점에서 ‘거주 복지’는 얻되 ‘재산 복지’는 잃는 셈이다.

📉 해외 사례 — 영국과 싱가포르의 다른 길

세계 각국도 ‘공공토지’ 정책을 시도해왔다. 대표적인 나라는 영국과 싱가포르다. 하지만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먼저 영국의 경우, 1940년대 이후 공공이 토지를 대규모로 보유하며 사회주택(Social Housing)을 공급했다. 초기에는 주거 안정에 기여했지만, 1980년대 이후 ‘라이트 투 바이(Right to Buy)’ 정책으로 입주자들이 집을 매입할 수 있게 되자 공공토지는 급격히 민영화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공공임대 부족과 주거난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HDB(주택개발청)가 토지를 99년 장기임대 형태로 운영한다. 시민은 건물을 소유하지만, 토지는 국가 소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적인 이유는 정부가 강력한 공급 정책과 재정 지원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즉, 공공토지 자체보다 ‘공급의 지속성’과 ‘정책 신뢰성’이 안정의 핵심인 셈이다.

🏙️ 한국형 토지공개념의 문제 — 제도는 있으나 신뢰가 없다

한국은 이론적으로는 공공이 토지를 소유하고 시장을 조절하는 구조를 이미 갖고 있다. LH, SH, 지자체가 전국의 공공택지를 관리한다. 하지만 국민은 이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공공이 토지를 가지고 있어도 공급 시기와 분양가를 시장 안정보다 정치 일정에 맞춰 조정하기 때문이다. 즉, 제도는 ‘시장 안정용’이 아니라 ‘정책 성과용’으로 쓰인다. 또한 공공이 보유한 토지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민간에 분양되거나 재개발된다. 그 과정에서 토지이익은 다시 민간으로 흘러간다. 결국 장기적 안정은커녕, 투기 기대만 자극하게 된다. 토지임대부 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공공이 토지를 소유한다지만, 결국 건물 감가상각 이후에는 실질적 자산 가치가 남지 않는다. 이 제도는 ‘집값을 낮추는 효과’는 있으나, ‘세대 간 자산 형성의 균형’을 해치고 있다.

📊 경제학적 관점 — 공급 제약과 심리적 가격 기대

경제학적으로 볼 때 토지를 공공이 소유할 경우 시장 공급은 단기적으로 감소한다. 민간 개발자들이 토지 매입이 불가능하므로 건설 프로젝트가 줄어들고, 공공의 공급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공급 부족 → 가격 상승이 발생한다. 또한 부동산 가격은 단순히 ‘거래 가능한 토지’의 양뿐 아니라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공공이 시장을 강하게 통제할수록 사람들은 희소한 자유 시장 토지를 더 높게 평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공공토지의 확장은 민간 토지의 프리미엄 상승으로 이어진다. 즉, 시장 전체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격차만 키울 수 있는 것이다.

💬 사회적 관점 — 주거 안정 vs 자산 불평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토지 정책이 완전히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소득 하위 계층에게는 ‘토지 부담 없는 주택’이 실질적인 삶의 안정망이 된다. 즉, 공공토지는 복지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이 제도가 사회 전체로 확산될 경우다. 모든 국민이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부의 축적 수단’이 사라지고, 세대 간 불평등이 고착화된다. 공공이 토지를 소유할 때는 그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복지형 주거 안정이냐, 시장 안정이냐. 이 두 목표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현재 한국의 정책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노리다 보니 복지도, 시장 안정도 달성하지 못하는 중간지대에 머물러 있다.

🔎 결론 — 토지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 전체’여야 한다

공공이 토지를 소유한다고 해서 부동산 시장이 자동으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안정을 만드는 것은 공급의 예측 가능성, 제도의 일관성, 국민 신뢰다. 토지를 공공이 소유하더라도 그 이익이 국민 전체에게 투명하게 환원되지 않으면 그 제도는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을 낳는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토지공개념은 ‘정부의 독점’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 소유하고, 함께 사용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 공유지분형 주택, 커뮤니티 랜드 트러스트 등의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진짜 안정은 소유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신뢰의 복원에서 시작된다. 토지의 주인이 정부 한 기관이 아닌, 모든 시민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균형을 되찾을 것이다.

토지 매매
토지 매매
토지 매매
토지 매매
토지 임대부 주택
토지 임대부 주택
토지 임대부 주택
토지 임대부 주택